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시다 켄이치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吉田健一 [[https://twitter.com/gallo44_yoshida|개인 트위터]] [[일본]]의 [[애니메이터]]. 1969년 11월 23일 생. ([age(1969-11-23)]세) [[구마모토현]] 출신. [[스튜디오 지브리]]에서 키우던 천재 애니메이터. 특유의 수려한 그림체, 부드러운 움직임, 정돈된 레이아웃까지 천재라 할만하다. 친구인 [[야스다 아키라]]는 '신'이라고 부르고 팬들도 신이라 부른다. 원래 로봇 애니를 좋아해서 메카만 그리는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으며 이때는 [[카나다 요시노리]]와 [[이타노 이치로]]를 존경했다고 한다. 그러다 [[기동전사 건담]]을 통해 인간과 로봇을 둘 다 잘 그리는 [[야스히코 요시카즈]]를 알게 되어 둘 다 잘하는 걸 목표로 하게 되었다. [[https://febri.jp/febri_talk/yoshida_kenichi_1/|#]] 이후 사람을 잘 그리고자 [[타카하시 루미코]]의 만화를 따라 그리며 인체를 연구했다고 한다. 야스히코의 작화를 따라 그리고 싶었지만 자신이 어릴 땐 비디오 녹화하는 기계가 없어서 만화를 따라 그릴 수 밖에 없었다고. 자신의 캐릭터 디자인은 무의식적으로 슬랜더해지는데 타카하시 루미코의 그림을 모작하고 공부한 것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한다. 자신의 작화는 [[타카하시 루미코]], [[야스히코 요시카즈]], [[오토모 카츠히로]]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. 애니메이터 [[콘도 카츠야]]의 그림을 보고 매료되어 이 사람의 그림을 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지브리에 들어갔다고 한다. [[https://akiba-souken.com/article/30188/?page=3|#]] 다만 지브리에서 작화를 배운 스승은 [[안도 마사시]]라고 한다. 그런데 나이는 동갑이고 지브리 입사 동기다. 동년배라 친해질 수 있었고 작업물도 공유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. [[마녀 배달부 키키/애니메이션|마녀 배달부 키키]] 당시 지브리에 있던 [[이소 미츠오]]에게 배운 것도 많다고 한다. [* 이소도 요시다와 나이 차이는 별로 안 난다. 요시다는 이소의 나이를 알고 그 나이에 이 실력이라니 하고 크게 놀랐다고 한다.] 그래서 이소 미츠오가 감독하는 작품은 도와준다고. 그러나 [[모노노케 히메]] 제작 중에 오토바이 사고로 허리, 골반 골절 및 내장파열로 죽을뻔 했다고 하며 이 때문인지 건강상태는 좋지 않아 장기간 일하는 작품은 드물다. [[미야자키 하야오]]는 사고가 났을 때 프로가 자기 몸 간수도 못해선 안 된다며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. 그럼에도 애정을 가지고 참여하는 대표작이 [[교향시편 에우레카 세븐]]. 이것만은 계속 참여하고 있었지만 [[교향시편 유레카 세븐: 하이에볼루션 3]]에서는 사정상 참여하지 못했다. [[카와구치 요시타카]] 프로듀서에 따르면 요시다는 [[토미노 요시유키]]가 작품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지브리를 퇴사해 [[오버맨 킹게이너]]에 참가했고 토미노도 평소 지브리 작화를 좋아해서 요시다를 굉장히 좋아했다고 한다. [[http://sunrise-world.net/feature/feature.php?id=9122|#]] 야스다 아키라와 함께 말년의 [[토미노 요시유키]] 감독의 페르소나이다. 야스다 아키라와 일하는 경우가 많더니 이젠 그림체가 많이 비슷해졌다. [[오버맨 킹게이너]] 때 야스다 아키라는 애니메이터가 아니라 애니메이팅을 고려하지 않고 디자인을 했고 디렉터였던 요시다 켄이치가 직접 애니메이션의 디자인은 왜 선이 많으면 안 되는지 가르치면서 친해졌다고 한다. [[이소 미츠오]]의 말에 따르면 요시다 켄이치는 [[야스히코 요시카즈]]에게 직접 작화를 배운 적이 없는데도 매우 비슷한 작화를 하는 애니메이터라고 한다. 제자는 많지만 고유한 스타일의 명맥이 끊겼던 야스히코의 [[격세유전]] 후계자라고 생각한다고 한다. [[https://anime.eiga.com/news/115187/|#]] 야스히코 요시카즈도 에우레카 세븐 때 요시다 켄이치와 같이 한 대담에서 요시다 켄이치의 작화 실력을 호평했었다. 작화 실력은 뛰어났으나 작업 속도가 느렸다고 한다. 그래서 작화를 하는 경우가 드물고 캐릭터 디자인이 주업무이다. [[모노노케 히메]] 때 느리게 그려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요시다 켄이치는 애니메이터를 그만두는 게 좋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.[* 애니메이터는 작업량으로 돈을 받는 업종이라 그리는 속도가 느리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.] 이런 점에선 [[사다모토 요시유키]]와 비슷한 타입이다. 같이 일하는 애니메이터는 [[쿠라시마 아유미]], [[후지타 시게루(애니메이터)|후지타 시게루]]가 있다. 제자는 [[쿠도 마사시]]가 있다. 토크를 잘해서 강연이나 토크 이벤트로도 수익을 내고있다. [[영상연에는 손대지 마!]]의 작가 오오와라 스미토가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. 특히 [[교향시편 유레카 세븐]]의 26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. 요시다 켄이치는 그 얘기를 듣고는 기뻐하며 애니메이션 2화 엔드 카드를 그려주었다. 애니메이터 [[아라이 요지로]], [[스기야마 카즈타카]], [[오오쿠라 케이스케]]도 요시다 켄이치를 존경한다고 한다. [* 아라이 요지로는 [[지구 밖 소년소녀]]에서 요시다 켄이치와 같이 작업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